고양이에게 의무를 다하는 디자이너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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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프로덕트 디자이너 민희수입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

어릴 때 컴퓨터를 붙잡고 살았어요. 게임을 가장 많이 했고, 나모나 포토샵 같은 툴로 잡다한 것들 만드는 것도 좋아했어요. 툴에 대한 재미가 디자인에 대한 흥미로 발전해서 지금은 그걸 업으로 삼고 있네요. 나름대로 잘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게 종착점은 아닌 것 같고, 기회들을 따라가다 보면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이 디자인으로 이끌었나요?

글쎄요, 어릴 때 장래희망란에 별생각 없이 디자이너를 적기는 했던 것 같은데. 그때도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그냥 멋있어 보이고, 창조적여 보여서. 원래 꿈이라는 게 별 시답잖은 이유로 정해지잖아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학교에서는 어땠나요?

여느 학과들이 그렇듯 디자인과에도 별 수업이 다 있었어요. 타이포그래피, 드로잉, 영상, 사진, 공간 등 서로 결이 달라 보이는 다양한 수업들이 죄다 필수 수업이어서 전부 들어야 했죠. 미래에 내가 뭘 하게 될지 예측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장학금과 학점을 위해 나름 열심히 수강하기는 했었어요. 각자 과목마다 매력이 다르고, 다른 고통이 있고, 그럼에도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 더 겪어 보니 알겠더라고요. 디자인은 어찌 됐든 다 이어져 있어서, 뭐라도 할 줄 알면 그게 다 작업물에 녹아들어 새로운 방향성을 부여한다는 거요. 그래서 지금도 일부러라도 다양한 걸 해 보려고 하고는 있습니다.

UI/UX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사실은 대학교 3학년 때까지는 편집이나 그래픽을 하게 되겠지 막연히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다 제가 3학년 때 선배들 수업 중 UX 수업이 생겼고, 네이버 현업 디자이너분께서 진행하는 강의였습니다. 하루는 복도에 선배들이 서비스를 디자인한 작업물들을 붙여 놓은 걸 보게 되었는데 그게 저에게는 꽤 색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저희 과 애들은 예술 쪽, 미술 쪽으로 많이 나갔거든요. 저는 영 일러스트에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딘지 맞는 일을 발견한 기분이었죠.

그럼 그때부터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군요

확실히 계기는 되었어요. 4학년이 되면 꼭 그 수업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바뀌었더라고요. 그래도 학교는 그냥저냥 잘 다니다가, 네이버의 UX 디자인 인턴십인 UXDP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3학년 때 봤던 교수님이 그곳에 계시니 그냥 지원해봤어요. 그분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 혼자 그분을 저 취업시켜 준 교수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하루의 모습

10시쯤 일어나서 11시에 출근해요. 기상 후와 취침 전은 고양이에게 의무를 다하는 시간이고. 업무는 거의 정해진 시간 없이 하는 것 같아요. 일찍 퇴근했다가도 새벽에도 일 생각이 나면 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식입니다. 회사 업무 외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포함해서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고양이를 끌어안고 털을 들이마시면 풀려요. 쉴 때는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며 혼자 놀고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한 번 정한 그림으로 진행하기보다는, 계속 확장된 방향으로 뻗어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UX 설계를 할 때면 허락된 리소스 안에서 어떤 스펙이 가장 효율적이고 더 나은 사용성이 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거죠. 아마 어떤 디자이너든 다 비슷할 것 같기는 하네요.

작업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영감이라는 단어가 되게 민망한데, 굳이 떠올려 보면 저 스스로의 불편함이 어떤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제가 천성이 게으르고, 효율과 융통을 굉장히 중요시하거든요. 게으르기 위해서 부지런해져요. 어떤 툴을 익혀도 웬만하면 꼭 단축키를 외워 사용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툴이 있으면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 바로 바꿔 버리고. 집 구조도 최적의 구조가 나올 때까지 계속 바꿔요. 불편을 예민하게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프로덕트에 대한 기준이 올라가거든요. 그리고 그 높은 기준이 있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쏟게 되는 거죠.

레퍼런스는 보통 어떻게 찾나요?

포장해서 말하면 얼리어답터고 솔직하게 말하면 휴대폰 중독인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제품에 대한 인풋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앱 스토어 자체가 어떻게 보면 레퍼런스의 바다잖아요. "모빈" 같은 사이트들도 자주 봐요. 앱들을 화면 별로 정리해 준 사이트인데, 가입하기 어려운 해외 앱들이 많아 유용해요. 학생 때는 어떤 디자인을 하든 비핸스를 더 많이 봤는데, 요즘은 그래픽 업무를 할 때를 빼고는 잘 안 찾게 되는 것 같네요. 그래픽이나 트렌드는 인스타그램으로도 자주 접하게 되어서 그런지.

가장 좋아하는 또는 자주 사용하는 앱이 있다면

"왓챠피디아"요. 쓰면 쓸수록 예상 별점이 잘 맞더라고요. 내가 자주 보는 장르, 감독, 영화를 리포트로 요약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컬렉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최근에는 책과 웹툰을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해서 아카이빙 용으로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UI/UX 디자인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기술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구현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가 UI/UX인 것 같아요. 어떤 서비스든 결국 경험을 위해 존재하는 거고, 쩌는 기술과 비전이 들어갔는데 UX가 구리면 그 기능을 정말 필요로 했던 유저도 답답해서 외면하게 되니까.

최애 디자인 툴이 있나요?

예전에는 프로토파이라는 툴을 좋아했었어요. 프로토타입으로 소통하면 대화나 설득이 한결 수월하거든요. 요즘은 피그마에서도 웬만한 프로토타이핑이 손쉽게 가능해서, 지금 최애는 피그마인 걸로 하겠습니다.

협업하기 좋은 동료란

저는 의사소통 방식이 잘 맞는 동료. 괜히 배려한다고 돌려 말하기보다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동료랑 일할 때 보통 분위기도 좋고 결과도 좋아요. 뭔가 안 맞는다 싶으면 즉시 편하게 물어보고, 반대 의견도 가볍게 던질 수 있으며, 또 즉시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요. 여기에 생각하는 결이나 방향 같은 게 맞는다면 더없이 좋겠죠. 가끔 있어요, 서두만 떼어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캐치해서 수월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동료가.

협업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나요?

머리에 있는 걸 꺼내서 보여 주는 것, 가시화해서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 디자이너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와 다른 직군의 의견이 다르다면, 서로 생각한 솔루션을 프로토타입으로 시각화해 보면 의사결정이 훨씬 쉬워져요. 시안으로 직접 보면 동료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거나 앞뒤가 맞지 않아서 제가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가 쉬워질 때도 있고, 막상 시안으로 보니 괜찮아서 제가 설득될 때도 있죠. 다들 목표가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니 어느 한쪽만 납득시킨다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 같아요.

업무를 전달받고 작업할 때의 플로우

다른 앱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이런 모양이 나오겠다는 걸 일차적으로 떠올려요. 물론 작업을 시작하면 보통은 그게 아닐 때가 많아요. 어긋나는 부분들을 발견하면 머릿속의 레퍼런스와 내가 생각하는 모양과 비교하면서 종일 고민하게 되죠. 이 솔루션 저 솔루션 다 만들어보고 다른 사람 의견도 물어보고. 더 나은 건 없을까, 더 자연스러운 건 없을까. 최종안이 정해지기 전까지 그렇게 작업하고, 정해지면 가이드를 만들고, 작업물을 공유합니다. UX writing이나 마케팅 쪽, 필요하다면 리걸 쪽에도 검토를 받고, 뭔가 이슈가 있으면 시안을 수정하고요.

UI/UX 디자인은 문제 해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나요?

그래픽, 타이포, 편집, 공간 등 다 관심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분들도 다 그러실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한 개만 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거든요. 취미로라도 이것저것 하면서 풀을 넓히는 거죠. 물론 다양한 분야들 중에 저는 UI/UX 설계하는 일이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게을러서 효율을 추구하느라 부지런하게 사는 모순된 사람인데, 어찌 보면 직업적으로 잘 맞는 선택을 한 거죠.

어떤 점이 좋은 디자이너를 만들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것이요. 높은 기준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솔루션을 찾으려고 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저 입장을 잊지 않는 것. 서비스를 망치는 가장 큰 요소가 공급자적인 마인드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 모두 디자이너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이제 막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

조언을 할 게 있을까요. 보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입니다. 직업 잘 선택했다고 해 주고 싶어요. 운동 시작하세요.

집중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나요?

주변 청소. 만약 집중이 안 되면 딴짓을 먼저 한 다음에 다시 돌아와요. 안 될 때는 아예 안 하는 게 나아요. 머리 식히고 물 한 컵 마시고 다시 시작.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하나 더 할 수 있다면?

풀스택 개발자……

좋아하는 영화

로베르토 베니니 -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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